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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24 (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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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용서> -창세기 45:1-11




요셉의 용서(창세기 45:1-1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나이까? 형들이 놀라서 능히 그 앞에서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 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요셉이라,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 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 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 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에게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 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 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 서! (창세기 45:1-11)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미워하고 기억하는 것 보다 낫다!

무슨 뜻입니까? 참된 용서는 용서하기에,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용서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이같이 용서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 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서로 용서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를 다른 말로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독교의 사랑><용서의 사랑>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라 칭하는 것은, 그분은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 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드님으로 하여금 대신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해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로부터 시작됩니다(로마서 5:10).

그리고 용서하시고 다 잊어버리시는 이 철저한 용서로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아름답고 행복한 새 역사는 시작됩니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찬송가 187장은 <용서받은 자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로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용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인간관계의 허다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용서하고 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부부간의 문제도,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도, 이웃과의 갈등의 문제도, 직장동료와의 갈등의 문제, 일단 용서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됩니다

의학적 통계에 의할 것 같으면, 정신병의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가 미움과 분노입니다.

미움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마음이 병들어가고, 이 마음의 병 때문에 결국은 정상적인 사고능 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심리치료사>들은 환자 스스로 <용서를 선택>하도록 유도해 나갑니다

그리고 용서를 선택한 그 순간부터 세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삶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되면 치료는 다 끝난 것입니다.  
인간의 허다한 병들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미움과 분노가 사람의 몸도, 마음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을 줄 아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건강합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게 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사람이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 <양치는 언덕>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 목사님의 딸이 어느 화가청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이 청년과 함께 야반도주를 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딸은 얼마 안되어 마음에 상처만을 안고 홀로 돌아옵니다.

이 청년의 바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이 화가청년은 폐인이 되어 다시 그녀를 찾아옵니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고, 그의 병은 꽤 깊어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청년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고, 그리고 정성 들여 간호하며 치료했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그녀의 마음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청년의 건강이 거의 회복되어가든 어느 날, 이 목사님은 마침내 그녀에게 묻습니다.

„얘야, 너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이 청년과 함께 야담도주까지도 감행했든 그녀는 아버지의 이 같은 질문에 아무 대답을 못합니다

그런 딸에게 이 목사님은 타이르듯 말합니다.

„얘야,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다! 

기독교는 용서를 위한 종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모든 지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기에, 동일하게 남을 용서하며 

살아가도록 의무가 지워져 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13-14)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무슨 뜻입니까

옛날 전장(戰場)에 나가는 군인들은 갑옷을 걸친 후 갑옷이 흔들거리거나 벗겨지지 않도록 허리부분을 띠로 꼭 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전무장>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신앙,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는 신앙, 이 신앙이야말로 참다운 신앙 이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완전한 신앙>입니다. 바로 <요셉의 신앙>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 한번째 아들이었습니다.

뒤늦게 본 아들인데다가, 그의 네 아내 중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낳은 첫아들이었기에, 야곱의 요셉에 대한 애착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어 아버지 몰래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요셉의 형들은 야곱에게 „아버지의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먹었습니다“고 거짓 보고를 했 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이십 년이 지난 후, 요셉을 애굽의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먹은 형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갔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있는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애굽에 곡식을 사러 간 요셉의 형들이, 먼저 총리께 인사를 올리라는 말을 듣고 총리집무실을 찾아가 절을 올렸는데, 그 애굽의 총리가 바로 그들이 애굽에 종으로 팔아먹었던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에게는 마침내 원수 갚을 기회가 왔고, 요셉의 형들은 꼼짝없이 붙들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셉은 단 한마디의 비난의 말도, 원망의 말도 하지 않고, 그의 형들을 용서하고사랑으로 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입니까?

그러기에 요셉의 <용서와 사랑>, 후일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의 모형(摸型)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에게 부당한 고통을 끼친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는 것입 니다.

,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통치원리입니다. 인간의 선행에 대해서는 후히 보상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악행에 대해서는 엄히 징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 하나, 다 보시느니라! (욥기 11: 11) 

<죽으면 살리라> <안이숙 여사>의 책에 보면, 어느 한 미국교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가정주부인데, 어느 날 한국에서 그녀의 한 친구가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우선 당장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이 친구는 그녀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눌러앉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의 남편을 가로채 버립니다.

무작정 집을 나와야 했든 그녀는 갈 곳이 없었는데, 어느 친절한 미국남자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거하게 되고, 후일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백만장자였든 그의 부인이 됩니다.
그 후 그녀의 전남편과 그녀의 남편을 가로챘든 그녀의 친구는 어느 날 자동차사고를 당하여, 둘 다 전신마비의 불구자가 됩니다

그녀의 전남편은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어 한국의 친지들이 데려갔는데, 그녀는 버려진 채였습 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이 친구를 데려다가 돌보아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용서와 사랑>입니까?

그녀의 전남편과 그녀의 친구는 마땅히 받을 벌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두 사람 을 용서하고 품었습니다.

원수 갚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원수 갚는 일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품는 이 사랑이야 말로 위대한 사 랑인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일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9-21)

<주기도문(主祈禱文)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 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내가 남을 용서한 만큼 나를 용서해 주십시요!“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용서 안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나도 남을 용서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용서>는 어떤 것이 <진정한 용서>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로 요셉의 용서는 <일방적인 용서>였습니다(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무었입니까? '정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 쏠리는 감정의 흐름을 말합니다

<부부간의 정>, <부모와 자식간의 정>처럼 그 어떤 걸림도, 거리낌도 없는 순수한 사랑의 마음, 이것 이 곧 정입니다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모처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반가움에서 우러나는 격정적인 눈물이 있습니다.

요셉의 눈물은 바로 이러한 눈물이었습니다.

<KBS>의 프로그램 중에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 가운데 매주 수요일의 프로그램은 흩어진 혈육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았든 이산가족들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 얼싸 앉고 엉엉 우는 장면이 매번 연출이 됩니다.

그런데 그 중 얼마든지 성사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사되지 않았던 마음 아픈 상봉이 있었 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래 전 노르웨이에 입양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한 군의관과 한 처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난 후 이 군의관은 이들 모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가정을 꾸립니다.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그는 홀트를 통해 노르웨이의 양부모에게 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삼십 세의 청년으로 훌륭히 성장한 그는 그를 낳아준 부모를 만나고 싶어 홀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소재는 밝혀졌지만, 그의 아버지는 „내가 오래 전에 버린 자식인데,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상봉을 거부 합니다.

단지 전화소리로만 그의 친부의 이 같은 말을 들은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나는 나의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다음에는 나의 양부모님과 함께 다시 한 국을 찾을 것입니다.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요셉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들의 지난날의 악행에 대해 회개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의 형들을 보았을 때,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혈육의 정이 솟아올라, 도무 지 스스로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형님들, 나 동생 요셉입니다!“라고 소리쳐 말한 후 방성대곡을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요셉은 형들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됩니까? 그가 일방적으로 그의 형들을 용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셉은 형들의 과오를 들먹이면서, 그의 형들이 기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형님들이 나에게 이런 큰 죄를 지었지만, 나 그냥 다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금술 좋은 부부는 부부싸움을 해도, 다시 화해한답시고, 이러 쿵 저러 쿵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한번 피식 웃어주면 다 통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입니다

둘째로 요셉은 누구에게도 그의 형들의 과오를 말하지 않았습니다(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 신복들이 기뻐하고! 

„바로와 그의 신복들이 기뻐하고!

무슨 뜻이겠습니까

요셉은 그의 측근들과 바로 왕에게, 그의 형들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의 형들인데, 나를 시기하고, 나를 미워해서, 나를 이곳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만약 그가 이렇게 말했다면, 바로 왕은 틀림없이 요셉의 형들과 그들의 식솔들이 애굽의 가장 기름진 땅에서 최선의 대우를 받으며 살게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참된 용서 자는, 용서받은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 용서받은 사람을 부끄럽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 입니다

진정으로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요셉은 그의 형들과의 거리감을 없앴습니다(4).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진정한 용서는 상처로 인한 거리감 까지도 없앱니다.

친근함으로 다시금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둘로 갈라졌습니다(마태복음 27:51).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동시에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의 은혜 안에서, 누구든지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어졌음을 의미합 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 하여, 휘장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넷째로 요셉의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 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섭리(攝理)가 무었입니까?

이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主權的 役事)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攝理的 觀點)이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이해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 같은 관점으로부터, 그가 겪은 모든 시련과 고난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로마서 8:28).

그래서 참된 신자는 그 어떤 형편에서건 하나님에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요셉의 용서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용서입니다(창세기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더라!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거지, 거지, 상거지가 되어 돌 아온 그의 방탕한 아들을 목욕시키게 한 다음, 가장 좋은 옷을 꺼내다 입히게 하고가장 좋은 신발을 신기게 하고, 손에는 금가락지까지 끼우게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용서를 통한 관계회복입니다.

말씀 의지해서 진정한 용서의 사람이 되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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