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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12-26 (일)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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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낮추는 자(눅 14:7-11)
커뮤니케이션과 설교(PM743)
              
                by
                   서정복(JUNG BOK SUH)
                   (일본선교사 G 10059130)
  
                 Communication and Preaching
                         Dr. Sunukjian

                   Fuller Theological Seminary
                     Korean Doctor of Ministry
                          Summer, 2002


                           자기를 낮추는 자
                             (눅 14:7-11)

도입: 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바로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1. 사람은 세 가지 재료로 지음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2. 사람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를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회복에 가장 장애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삶의 질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 것은  자기를 낮추는 삶입니다.

전환 1. 자기를 낮추는 삶이 왜 귀한가?
        A.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이웃을 해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B.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된 다.

        C.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요, 행복한 사람이다.

        D. 자기를 낮추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환 2. 어떻게 자기를 낮추는 삶이 가능한가?
        A. 하나님의 은혜로 내 자신을 밝히 보게 될 때

        B.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를 높이는 것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가를 알게 될 때

        C.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깨뜨려 주실 때

마침
자기를 낮추는 자(눅 14:7-11)

1. 사람은 세 가지 재료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제일 먼저 흙이란 재료를 사용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2:7).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을 지으실 때도 흙을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창1:11,22).
흙은 자연의 기초가 되는 재료입니다.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흙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한 가지 재료를 더 사용하셨습니다. 그 재료는 하나님의 생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사람 속에 자기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또 한 가지 재료를 더 사용하셨습니다. 그 재료가 무엇인지 아시죠?  
창2:22을 함께 읽어 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사람)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의 한 부분을 재료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은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흙과 하나님의 생기와 그리고 사람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성향이 있습니다. 세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려는 성향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려는 성향과 사람에게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즉 사람에게는 자연적이고 동식물적인 존재로 전락하려는 성질도 있고 신적인 존재로 승화하려는 성질도 있고 인간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짐승이나 악마가 되려는 성향도 있고 천사나 하나님이 되려는 성향도 있고 그저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성향도 있습니다. 사람은 세 가지 가능성을 지닌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악마가 될 가능성도 지니고 있고 천사가 될 가능성도 지니고 있고 그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존재 이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세 가지 형상이 있습니다. 흙의 형상도 있고 하나님의 형상도 있고 인간의 형상도 있습니다.

2. 사람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첫째,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지어 주신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전도서 12장은 인생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고 말합니다. (전12:1,13).

둘째, 사람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사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라고 분부했습니다. 여기 다스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는 방식으로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즉 보살피며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정리하면, 사람이 지음을 받은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돕는 것입니다.
또한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즉 대신관계, 대인관계, 대물관계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는데 가장 큰 적이 무엇인가 하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예수님 말씀은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근본 문제를 풀어 주는 너무도 소중한 진리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 진정한 성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두 종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비교해 보면 첫째는 자기를 높이는 자의 삶, 또 하나는 그와 반대로 자기를 낮추는 자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낮추는 자의 삶을 사는 것 같고, 겸손한 것 같지만은 사실은 자기를 높이는 고도의 술책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로 산다는 것은 우리 인간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신 열두 사도들도 다른 문제는 다 해결되었지만 끝까지 남은 문제가 바로 자기를 높이는 문제였습니다.
예전에 사도들은 서로 갈등을 했고 서로 괴로워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 은혜로 낮추는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마는 그만큼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냐? 오늘 말씀과 연관해서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마태복음 11장 29절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빌립보서 2장 5-8절에 예수님의 마음이 나오는 두 마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비워" 캐노스 라는 유명한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마태복음20장 26-28절에 "제자들이 누가 크냐?" 하는 이런 의식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 이니라 "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자기를 낮추는 자의 삶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자기를 낮추는 삶이 왜 이렇게도 귀하고 복된 것인가?
왜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인가? 그만큼 아름답고 복된 것이다는 말입니다.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또 여러분 나름대로 묵상하시고 이유를 찾아 보십시오

(1). 자기를 낮추는 자는 다른 사람들, 곧 내 이웃을 해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에게는 자기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경쟁 관계가 됩니다. 한 부모 아래 태어난 형제간에도 경쟁을 합니다.
가인과 아벨처럼 시기와 질투로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그런 비극이 일어납니다.
직장 동료 사이에도 얼마나 치열한 경쟁 관계입니까? 한 교실 안에 있는 학원을 다녀도 무서운 경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교회도 한 교회 안에 함께 신앙 생활하는 교우들 가운데도 예민한 경쟁심이 있습니다.
목사들끼리도 경쟁을 합니다. 심지어 교회끼리도 시기와 질투심으로 누가 더 높냐? 누가 더 크냐? 하는 날카로운 경쟁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2장 14-17절을 보면 바울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바울 사도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일등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그 누군가 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자들이 꺾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높아 질 수 없잖아요? 두 사람이 다 일등 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꺾어져야 합니다.
바로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이웃이 없게 됩니다. 다 경쟁 관계 입니다.
그들 위에 내가 서던지 아니면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 중에 나보다 더 앞서간다던지 높아지던지 나보다 커지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는 자는 이런 시기와 질투와 경쟁의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무도 꺾을 필요가 없습니다.
짓밟고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는 진정한 이웃이 있게 됩니다.

(2). 자기를 낮추는 자는 진정으로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아무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좀 이상한 표현이죠? 자기를 높이는 사람도 물론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하고 충성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사랑하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봉사를 하고 충성을 하고 희생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답고 고상한 것들조차도 실상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자기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가증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 순간 가장 고상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설교하는 목사의 마음속에도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어드리고 싶고, 위로해
드리고 싶고, 소망을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 속의 한 귀퉁이에는 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린전서 13장 3절에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모든 것을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데 그게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선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요? 자기를 높이기 위한 사랑, 자기를 나타내기 위한 희생, 이런 사랑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복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만이 사심이 없는 순수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3). 자기를 낮추는 자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 할 줄 아는 자요 또 스스로 행복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끝없이 24시간을 시기와 질투심 속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열등감이 강합니다. 누가 자기보다 더 잘 나가면 괴로워서 못삽니다. 부러워요.
그리고 항상 긴장해야 해요. 스트레스를 날카롭게 받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뒤떨어지면 그것에 대한 패배감 좌절감이 심하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거짓을 해야 됩니다. 음모를 해야 됩니다. 아첨을 하고 아부를 합니다.
거기에 위선이 있습니다. 주먹만한 사람인데 부풀려서 바위 덩어리 같은 사람이라고 자기를 과시를 해야 됩니다.
계산된 선행을 해야 됩니다. 천원을 주면은 만원을 거둬들이려고 하는 계산속에서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고달픈 삶입니까? 그리고 안식이 없습니다.
이렇게 쏟아 버린 세월, 이렇게 쏟아 버린 정력, 이 모든 것은 문자 그대로 탕진입니다. 허비입니다.

혹시 이렇게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될지라도 그 사람의 영혼의 내면세계는 완전히 황폐된 것입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으나 처참하게 실패 한자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는 자는 왜 행복한가 하면 바로 이 무지무지한 시기와 질투라고 하는 무서움과 거짓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렇게 계산된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여기에 진정한 안식이 있고 여유가 있고 자유가 있고 평안히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더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또 성공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게 되어지시길 축복합니다.

(4). 자기를 낮추는 자 만이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4절에 "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천국에 거의 못 들어간다는 소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자가 됐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된 다음에 오는 것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면 높아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낮추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평생에 부자로 산 사람은 대접을 받고, 또 자기를 높이는데 길들여졌는데 그것이 습관화가 되었는데 천국에 가기 위해서
갑자기 낮출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오기 전에 천국 문턱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미리 날마다 자기를 낮추는 자의 연습을 해야 됩니다.

2. 어떤 사람이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사항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 예수님만이 사셨던 길이요, 걸으신 길인데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만이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세 가지로 생각 해 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로 내 자신의 실상을 밝히 보게 될 때부터 낮추는 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해서 자신을 깊이 봐야 합니다. 역사 간운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깊이 보았습니다.
자신을 깊이 바라본 바울은 자신을‘죄인 주의 괴수’라고 했고,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18:27에서 ‘티끌 같은 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자신이 죄악에 쌓인 티끌 같은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저 자신도 참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누구한테 지는 것 싫어하고 뽐내기 좋아하고 좌우간 내가 항상 일등을 해야 그래야 마음 편안한 그런 무서운 교만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형편없는 흉악한 거짓이 많은 악한 그런 죄인이란 사실을 보게 됐을 때 이런 내가 고개를
든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너무도 황송한 일이었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자기를 알 때만이 진정으로 낮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낮아짐을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다 해도, 내가 죄인인데 나한테 욕을 한들 그렇게 화가 나겠는가?

(2).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를 높이는 것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가를 알 게 될수록 자기를 낮추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만 가지 죄들 중에서 가장 큰 죄, 가장 흉칙한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만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뽐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교만이, 이렇게 자기를 높이는 것이 죄 중에 죄 인고 하니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복을 받는 것 참 좋은 것 입니다. 또 잘되는 것 참 좋은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복을 받을수록, 높이 될수록, 잘 될수록 반드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 교만" 입니다.
그 누구도 높이 되고 잘될 때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고, 성공을 하고, 잘되는 것 참 좋은데
바로 교만이 따라가니 오히려 복이 저주가 되어 버립니다.
차라리 복을 안 받고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것이 그 영혼에게는 안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만은 무서운 죄입니다.

또 하나 이유는 다른 죄는 끊어집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면 그다음부터는 거짓말이 끊어집니다.
도적질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도적질이 끊어집니다. 모든 죄는 내가 참으로 회개할 때 끊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죄를 끊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빛 가운데 아름답고 의롭고 깨끗하게 열심히 삽니다.
이제는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깁니다. 의롭게 삽니다. 하나님 일에 충성합니다. 봉사합니다.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의로운 세계, 빛 가운데 다른 죄는 들어 올 수 없지만 바로 이렇게 의로운 삶 속에 아름다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무서운 죄가 있습니다. 바로 교만 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나는 이만큼 교회에 봉사한다"하는 그런 의식이 뒤 따라 옵니다.
얼마나 끈질긴 죄인 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수록 너무 어렵습니다.
다른 죄는 벗을 수 있지만 이 교만을 벗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 무서운 죄구나! 교만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죄구나! 하는 것을 알면 알수록 거기서 그만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깨뜨려 주실 때만이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란 뭔가 잘되면 반드시 자고(자기를 높임)합니다. 우선 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뭔가 좀 세워 주시고, 뭔가 좀 되게 하시면 반드시 제 마음속에 자고한 마음이 꼭 일어납니다.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제 마음 깊은 의식 속에 일어나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살피시고, 정확하게 보시고 계십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뭔가 되고 나서도 그것을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의식이 조금만 싹이 트면 내 영혼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즉시 바로 치십니다.
그러니까 깨닫고 보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이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 환란(고난)이라는 것을 사용하십니다.(롬5:1-5)3절-“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왜?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난이 오게 되면 나는 깨어지고 내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이란 가만 놔두면 다 천사 같아요. 저 보십시오.
목사로서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 전할 때 얼마나 거룩하고 고상하게 보입니까? 이것이 진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거룩하게 보이는 이 사람을 환란의 망치로 꽝 때려보면 이 껍질이 다 벗겨져 버립니다.
깨져 나갑니다. 호두껍질 깨져 나가듯이, 그리고 내 속에 들어 있는 나의 참 실상의 내면세계가 드러납니다.
뭐가 보입니까? 부끄러운 모습 입니다.환란을 당했을 때 얼마나 나는 쪼그라지고 형편없는 모습입니까?
고집 세고, 혈기 많고, 옹졸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자기 한계를 경험하게 되고 사람에게, 자신에게 절망하면서 형편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고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어떤 모양이든지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있습니다.
좌절이 있고 실패가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생명이 되고, 안식이 되고, 축복이 되는가하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늘 당하는 고난, 아픔, 실패, 좌절, 부끄러움을 하나님이 나를 낮추시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구나!
그렇게 받아 드려야만 됩니다.

그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의 나에게 이 낮아짐이, 부끄러움이 가난하다든지 ,사업이 안 된다든지, 몸이 아파서 부끄럽다든지 ,남편이 아직도 안 믿어서
부끄럽다든지, 좌우간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부끄럽다든지, 어떤 모양의 낮아짐, 부끄러움, 좌절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 못하면 항상 마음속에 분노가 끌어 오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패와 낮아짐을 "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꺾으시니 나를 낮아지는 사람 곧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자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시는 구나!" 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 평안입니다. 그리고 치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복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두루 싸매어 주셔서 존귀한 자로 하나님이 세워 주시게 됩니다.
그렇게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 마음에 새기고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 하셔서 이 말씀으로 남은 날 주님이 가신 길,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나도 살고, 내 이웃도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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