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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02-16 (수)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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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다 (누가복음 16장 26절)
[ 너무 늦었다 ]

"이뿐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 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장 26절)

프랑스의 작가 싸르트르 (J. P. Sartre) 는 그의 한 희곡에서 이 세상을 방문이 잠겨있는 한 호텔 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방으로 한 사람이 인도 되었는데 그는 이 방에서 그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 지옥같은 방에 인도된 그는 호텔 종업원에게 이 방에 도움을 청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초인종이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하나 있기는 있습지요" 라고 그 종업원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고장이 나서 거의 작동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완벽한 조건 속에서 완전하게 태어나지 아니하고,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불완전하게 태어납니다.
그러기에 삶 자체도 대단히 불평등하고 상대적입니다.
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사람이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약한 사람이 있으며, 부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사는 곳에는 갈등과 시련이 있으며,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있게 됩니다.
물론 이처럼 불평등하고 상대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켜 주고, 불행도 행복도 함께
나누어 가지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정치의 기술이고 종교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같은 이상적인 삶을 구현하는데 끊임없이 실패해 왔습니다.
그래서 세계 질서는 끊임없이 파국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처절한 전쟁이 항상 그 어느 곳에서인가 계속되어
지고 있습니다.
더우기 사람을 죽이는 병기의 기술과 생산 능력도 고도로 발달되고 증가되어 현재 인간들은 땅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몇십번
몰살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분량의 병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허다한 사상가들과, 허다한 과학자들과, 허다한 정치가들이, 인간을 계몽하고, 기술을 발달시키고 사회를 개혁하여, 진정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이룩해 보고자 했지만, 모두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도 어디에선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사고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이유 때문에, 고독과 슬픔과 괴로움에 잠못이루며 고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의 역사는 평화와 행복과 환희의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재난과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래도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이 세상을 도저히 빠져 나갈 가망성이 없는 지옥과 같은 호텔 방으로 묘사한 싸르트르의 글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심지어 옛날 인도의 종교가들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를 하나의 형벌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거듭 거듭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는 윤회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긋 지긋 했으면 이렇게까지 생각했을까 하는 안스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은,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이신 하나님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의 단절에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 !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고
경건하며 선하고 진실하게 살지 아니하고, 탐욕을 품으며, 악하고 불의하며, 거짓되게 살아가는 죄의 생활로 부터 비롯 되어졌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인간들이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그 누구도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의로운 세상이 되어졌
다면, 우리에게서는 전쟁도, 굶주림도, 질병도, 불안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이미 모두 사라졌을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겪게 되어지는 모든 불행과 재난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무섭고 큰 형벌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찾아 옵니다.
우리는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집니다. 그런다음 지옥의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몸부림치며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죄의 멍에 아래 살아가고 있는 비참하고 가련한 인간들을 죄의 멍에와 죄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낙원으로 인도해 들이시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이렇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리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서 영접하는 순간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떠맡으시고, 그대신 우리에게는
[의인 (義人) ]이란 칭호를 부여 해 주십니다.
[의인]이란 죄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의인]이란 하나님의 자녀란 뜻입니다.
[의인]이란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되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이같은 구원의 기회가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기회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존해 있는 동안만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를 주로서 영접하고, 그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통하여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영원히 그 죄의 형벌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늦기전에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노후를 위해서 [양노보험]을 들고, 예기치 않은 사고와 질병에 대비해서 의료보험에 가입하며,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질 경우,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생명보험]에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영생을 위한 [특별 생명보험]에 들어야 겠습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그를 마음 속에 주 (主)로서 영접해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너무 늦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 예기치 않은 사고와 질병으로 죽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어느곳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나사로라고 불리우는 거지였고, 또 한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이 부자는 가진 재물이 많아 날마다 호의 호식하며 호화롭게 살았지만, 이 거지 나사로는 날마다 남의 집 음식 찌꺼기나 줏어 먹고
사는 신세였습니다. 이같은 극심한 가난 때문에, 몸에 상처가 나도 치료 받을 방도가 없어, 개가 핥고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지닌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경건 뿐이었습니다.
두사람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호의 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살던 부자는 가련하게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는 뜨거운 불 속에서 몸부림치다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천국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그가 알고 있던 거지 나사로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거지 나사로는 종종 그의 집에서 버려지는 음식 찌꺼기로 허기를 채웠기 때문에 그는 나사로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될 것이란
생각을 했던 듯 합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간청했습니다.
"아브라함이여 ! 아브라함이여 ! 나를 불쌍히 여기사 당신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이곳에 보내여,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좀 서늘하게 하도록 해 주십시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는 큰 구렁 (深淵)이 가로 놓여 있어, 아무도 건널 수 없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남아있는 그의 가족들이나, 그의 형제들도, 결국 그가 있는 지옥으로 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를 세상에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보내, 이 사실을 증거하게 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의 처소로 오지 않게 해 주십시요 !"
그러나 아브라함은 대답했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었던 자가 살아 돌아가 모든 사실을 증거해도, 역시
믿지 않을 것이다."

너무 늦었습니다. ! 그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습니다 !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그리고 세상에 남아있는 그의 가족들이나 형제들을 위해서도,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다만 그곳에 갇혀 언제까지나 뜨거운 불속에서 몸부림치며 울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하나님과의 연결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서 믿고 영접해 드리게 될 때에,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 문제는 즉시 해결되어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천국에서의 영생의 삶을 약속받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과의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기에는 너무 늦었다." 는 이 한마디 말 밖에 들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한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결코 우리의 운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
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늦기전에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는 늦기전에 예수를 주로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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