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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7-23 (금)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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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자! (창세기 35장 1 – 5절)
[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자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낮을 피하여 도망하면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세기 35장 1 – 5절)

야곱은 한 평생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고난의 삶을 살게 되어진 것은 주로 그의 그릇된 사고방식, 그의 그릇된 행실들 때문이었습니다.
차자 (次子) 였던 그는 장자 (長子) 의 권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의 아버지 [이삭]과, 그의 형 [에서]를 교묘하게 속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야곱은 더 이상 집에 머물 수가 없게 되어졌습니다.
그는 복수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그의 형 에서를 피해 멀리 하란땅으로 도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기구했던 고난의 삶은 이렇게 시작이 되어졌습니다.
긴 여행 끝에 [하란땅]에 도달한 야곱은, 그곳에서 그의 외삼촌 [라반]의 일을 거들면서 이십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는 그의 외삼촌 밑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외삼촌의 두 딸과, 그들이 각각 거느리고 있던 두 몸종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들에게서
아들 열한명과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무렵에는 꽤 많은 가축도 소유할 수 있게 되어졌습니다.
그는 머나먼 타향에서의 모진 고생 끝에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생활이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본문 창세기 35장 1절에서 5절의 말씀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만한 새로운 신앙의 자세로써, 새출발을 하고자 하는
야곱의 강한 의지와 결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아들들이 그의 딸 [디나]가 가나안 족속들중의 하나인 [히위족속]의 추장 [세겜]에게 끌려가 몸을 더럽힌 것에 대한
보복으로, 그들의 부락을 엄습하여 그들가운데 모든 남자들을 칼로 처죽이고, 그들의 부녀자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했던,
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된 직후 이같이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야곱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절대절명의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학살의 소식을 전해들은 가나안 땅의 다른 족속들이 야곱과 야곱의 아들들을 치기 위해서 언제 어떻게 군사들을
동원하게 되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하여금 그가 전에 그의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하던중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인 벧엘로 올라가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벧엘로 발행하기에 앞서, 그의 가족들과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우상들과,
부적처럼 차고 다니던 귀거리들을 모아 땅속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런다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야곱 일행이 이방신상들을 땅속에 묻어버린 것은, 그들이 후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믿고, 여호와 하니님 만을 의지할
것 이라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한 것은 이교도의 사상에 오염되어진 지난날의 왜곡된 신앙관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만
입각한 복음적 순수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옷을 갈아입은 것은 그들이 이제 순수신앙에 입각한 새생활을 시작하게 되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그가 아직 그의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고, 하니님의 축복도 약속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의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고, 그의 표현대로 험악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같은 실패와 고난의 원인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의롭고 신실한 신앙의 자세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기 보다는, 어리석고 교활한 인간의 수단, 인간의 방법, 인간의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해 주신 것을
스스로 성취시켜 보겠다고 한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안의 장자권을 야곱의 형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굳이 그의 형 에서를
속이고,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차지했습니다.
이같은 비열한 사기행각 때문에 야곱은 결국 고향을 등지고 이역만리 타향땅으로 도망 가 살아야 하는 비운을 겪게 되어졌습니다.
그는 또 그의 외삼촌 밑에서 품삯을 약속받고, 이십년 간이나 혹독한 머슴살이를 했지만, 번번히 품삯을 떼어 먹히는 헛 고생을
해야만 했고, 심지어 첫번째 부인을 맞이할 때는 속아 장가를 드는 기막힌 일도 당해야 했습니다.
어느것 하나 그의 뜻대로 순탄하게 되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일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그릇된 선택이, 그의 일생을 이토록이나
슬프고 괴롭게 만든 것입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을 때에도, 그의 외삼촌 라반의 성품이 다소간 외롭지못하고 비열하다 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의 외삼촌에게 이사실을 알리고 떠났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래 야밤도주 하듯 서둘러 도망하는 추태를 부려 그의 형편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 위하여 이일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틀림없이 대노하여 급히 그의 뒤를 쫓아간 그의 외삼촌 라반
일행에게 붙들려 노상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많은 우상을 섬기는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하여 순수신앙을 계승시켜 나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안에서 되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가 도망하여 살던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향을 떠나도록 명하신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이같은
특별한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어지도록 하시기 위함에서 였습니다.
이런면에서 볼 때 야곱이 그의 아내 [라헬]로 하여금 갈대아 지방의 우상인 [드라빔]을 소지하도록 방관한 것이나,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지참하도록 허용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저버린 불신앙의 행위였습니다.
라헬은 야곱이 그녀의 아버지 라반의 식구가 되어진 이래로, 그의 아버지의 재산이 얼마나 크게 불어났는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야곱을 생각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라헬은 그녀의 아버지 [라반]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 그녀의 아버지의 우상인
드라빔을 몰래 훔쳐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중동지방에 거주하던 민족들의 관념은 다신교적 (多神敎的) 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후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그들 민족의 신들과 그들 민족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단지 여러 신들중의 하나로만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야곱을 급히 뒤쫓아온 라반 역시 도중에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받았기에 차마 야곱을 죽일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도둑맞은 드라빔만은 꼭 찾아 내야겠다고 야곱에게 속한 사람들의 짐을 삿삿히 뒤져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분 오직 여호와 뿐이십니다.
그외에 신이라 불리우는 존재들은 실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무한 신앙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상상의 세계에서 고안되어진 것들에 불과합니다. 고대 중동지방의 다신교적인 영향을 받은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나
그의 딸 라헬은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은 그들의 神, 그들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바로 이같은 연유 때문에 야곱의 아내 라헬은 그녀의 가정의 행복과 번영을 염원하여 그녀의 아버지의 우상을 훔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행위는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불신앙의 죄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의 드라빔은 야곱의 가정에 복을 가져다 주지 아니하고 오히려 화만 가져다 주었습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도는 도중에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를 얻어 맞고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의 딸 디나는 불한당에게 끌러가 화를 당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여파로 온 가족들이 몰살당하게 되어질지로 모르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이르게 되어졌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 역시 그후 아이를 낳다 죽고 말았습니다.
왜곡된 신앙, 오염된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요, 하나님의 형벌 이었습니다.
이같은 가나안 인근 족속들의 전통적인 다신교적 종교관은, 훗날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쳐, 이에
동화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고 두고 재앙을 겪게 되어지는 비극의 주요 원인이 되어졌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에 이같은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중학교3학년 수확여행 때 였습니다. 당시 여행코스는 부산과 경주를 돌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긴 여행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우리 일행을 지켜주시도록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경주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기념선물을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쁘게 금물을 입힌 작은
콜라병 크기의 불상이었습니다.
나는 당시 나의 어머니가 불교신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작은 불상을 어머니를 위한 선물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오는 도중에 곁에 앉았던 친구의 무심코 한 손놀림에 불상의 목이 댕강 떨어져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척 마음이 상했지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독한 차멀미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 몇일 동안은 아무런 불편없이 유쾌한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를 위한 선물로 불상을 사가지고 오던 수학여행 마지막
날에는 어찌나 심한 차멀미를 하게 되었는지, 뱃속 깊히 들어있던 것까지 다 토해내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차를 타야만 했기 때문에 그것은 참으로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형벌이었습니다 !
나는 훗날 성인이 되어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때 일을 회상하며 그렇게 확신하게 되어졌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성경에도 무지했지만
그래도 하나님 께서는 훗날을 위해 바르게 다스리신 것으로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정작 어머니를 위한 선물로는 불상을 산것은 분명히 잘못된
불신앙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이 천사에게 얻어맞고 환도 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절게 되어진 것도, 또 그의 딸이 불한당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어진
것도, 그의 장인의 드라빔을 훔친 그의 아내 라헬이 도중에 아이를 낳다 죽은것도, 역시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불신앙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게요, 하나님의 형벌이었습니다.
오직 한분 하나님 여호와만을 믿고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복음적 순수신앙을 견지하지 않았던 야곱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었습니다.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의 큰 축복을 약속받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그의 생활가운데서 그릇된 신앙의 요소들을 청산할 때 까지는 끝내
그 축복을 다 누릴수 없었고, 그가 기대했던 하나님의 축복보다는 참혹한 실패와 극심한 고난과 시련만이 계속되어졌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복음적 순수신앙을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하나님의 복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모든 불신앙의 요소들을 철저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요즘 환경오염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매연과 공장의 폐수, 그리고 각종 산업쓰레기들이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를 무서운 속도로 파괴해 나가면서, 인류의 생존
자체마져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환경오염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바로 신앙과 신학의 오염입니다.
지금 온갖 그릇된 신앙관과 신학이론들이 순수한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매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복음적 신앙관 보다는, 하나님과 직접 상대해서 무엇인가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로 인하여 야기되어지는 교회내의 무질서와 혼란이 있습니다.
이들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보다는 자신들의 체험이나 직관을 더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쉽사리 이단종파의 함정에 빠져들고, 또 스스로 이단이 되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이단종파들이 이같은
극단적인 신비주의 자들에 의해서 창설되어졌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인 성경의 전통적인 권위를 부인하는 신신학자들의 소위 문서비평, 또는 고등비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의 궤변은 믿음이 깊지 아니한 신자들이나, 성경지식이 빈약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그같이 전도의 길을 막고 있습니다.

셋째로 합리주의라는 미명아래 세상의 그릇된 풍조와 타협하게 하는 적당주의자들의 타락된 설교가 있습니다.
이들의 거짓말은 아직 확신에 이르지 아니한 연약한 신자들의 신앙의지를 무력화 시키며,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그릇된 풍조와 타협
하게 하여, 점차 점차 죄의식이 희박해서 가는 신앙의 낙오자들이 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릇된 신앙관과 신학이론을 유포시키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단히 매력적이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사탄의 무서운 흉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교회내에 여선지 이세벨을 용납하는 죄에 대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이세벨은 왜곡된 신학, 거짓된 신앙풍조를 유포시키는 거짓 종들을 의미합니다.
순수 기독교의 신앙관을 이방종교의 신앙관과 혼합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거짓종들입니다.
순진한 기독교 신자들을 유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귀신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거짓종들입니다.
고등비평이라는 허울아래 연약한 기독교인들을 현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고, 마침내는 영영 죄와
불신앙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거짓종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빙자하여 온갖 거짓말을 유포시키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거짓종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필코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이같은 거짓종들의 말에 현혹되어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그들이 그같은 죄와 불신앙에서 돌이키지 않는한, 끝내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우선 그들은 땅위에서 환난을 겪게 되어질 것입니다.
또 그들은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와 함께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3)
그리고 종국에는 죽어 지옥불에 떨어지게 되어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1-15)

야곱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자 !“고 말했습니다.
[벧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야곱의 이 말은 그가 지난날의 오류에서 벗어나 이제는 복음적 순수신앙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안에 거하며,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생활을 시작하게 되어짐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철저히 회개하고 복음적 순수신앙 안에 하나님께 귀의한 야곱은, 그후 성자처럼 훌륭한 신앙과 인격을
지닌 당대의 의인이 되어졌습니다.

우리도 벧엘로 올라갑시다 !
우리도 야곱처럼 지난날의 오류와 지난날의 과오를 회개하며 복음적 순수신앙으로 돌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복된 신앙인이 되어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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