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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21 (금)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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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기도(다니엘 6:10-18)
               < 다니엘의 기도>
                - 다니엘 6:10-18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릅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언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며,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 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대,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시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 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을 쳐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느니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데살로니가 5장 17절의 말씀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신자(信者)>란 <기도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신앙생활은 기도자(祈禱者)의
삶을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도는 신앙인에게 영적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신자가 아닙니다.

<기도>가 무었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對話)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요, 인격적인 대화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당신의 백성들과 이 영적 대화, 인격적 대화를 부단히
지속해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6:7).
중언부언(重言復言)이란 말의 뜻은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방인의 기도>란 구체적인 어떠한 내용의 표현보다는, 같은 말을
수없이 되풀이 함으로써 그 어떤 신통력을 기대하는 주술사(呪術師)의 주문(呪文)과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불교의 기도문 가운데는 도저히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그 기도문을 수없이
되풀이하면 소원성취하고, 무병장수한다는식의 기도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뜻도 모르는 기도문을 두손을 싹싹비비며 몇백번, 몇천번씩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主祈禱文)>을 주문(呪文)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서 주기도문을 많이 되풀이하면 기도응답이 빠르다는
식으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식의 기도가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이런식의 기도는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이지 기도(祈禱)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영적대화를 원하시지, 우리의 주문(呪文)을 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우리의 기도가 도덕적이며, 구체적이며,
합리적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가 <이교도>의 주문(呪文)처럼 되어지거나, 기도가 무속종교(巫俗宗敎)의 한풀이
처럼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특별히 <시편>의 기도시들은 기도는 제대로 하고싶은데, 기도하는 방법이나 요령을 잘
모르는 초신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어집니다.
시편의 기도시들은 구약시대의 신앙의 위인들이나, 기도의 용사들이 하나님께 지어 올린
<기도문>들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교인들은 이 시편의 기도시에 곡을 붙여 예배시에 사용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에게 기도는 찬양이었고, 찬양은 곧 기도였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찬양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찬양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함께 모일 때 마다 기도하며 찬양해야 하고, 함께 모일 때 마다
찬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기본적인 틀이고, 이것이 신앙생활의 큰 틀입니다.

시편의 기도시들을 읽다 보면 „아,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가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기도가 시편의 내용처럼 그렇게 말이 훌륭하고, 내용이 번지르해야 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이기에,
기도에는 그만큼 정성이 들여져야 하고, 언어선택도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기도 세가지가 있습니다.
주문(呪文)을 외우는 것 처럼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대화이지 주술(呪文)이 아닙니다.
한풀이 식으로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맹목적인 기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을 원하시지, 마음에 쌓인 응어리와 한을 털어내듯이
아무렇게나 말을 쏟아내는 맹목적인 기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다른 사람 의식하면서 사람들으라고 하는 외식의 기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가까이서 듣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자신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이것은 기도의 남용(濫用)이요, 기도의 오용(誤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참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구약시대의 선지자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김없이 하루에 세번씩 무릅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그를 위기로 부터
건져내셨고, 그의 삶이 항상 형통케 하셨으며, 장차 성취되어질 하나님나라의 완성과
관련된 중요한 예언의 내용들이 그를 통해서 기록되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그는 참된 기도자였습니다.

첫째로 다니엘의 기도는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세번씩 무릅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의 이 기도는 그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가운데서 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보면 그가 처한 위기상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앞에 무릅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내용만이 나와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는 하나님께 구하기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지혜로운 기도자였다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의 말씀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은 그 어떤 형편에 처해있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러기에 역시 기도의 용사였든 <다윗>은 그가 지은 찬송시인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실 줄 믿었기에, 그는
그 절대절명의 위기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이란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태복음 1:23).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하나님의 이같은 약속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그 어떤 형편에서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압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감사의 말이 입버릇처럼 되어진 사람의
기도일수록 쉽게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지고, 감사가 넘치는 기도일수록 응답의 역사가
큽니다.
무슨뜻입니까?
다급할 때 일수록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곤난할 때 일수록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때 일수록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에 속도가 붙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는 속도요, 이루어지는 속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기도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출세를 하면 아무래도 주위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다니엘은 원래 그의 조국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망한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
포로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바벨론왕 에 의해서 바벨론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발탁이 되어집니다.
그의 이같은 특별한 출세가도는 바벨론왕국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멸망당할 때 까지
계속이 되어졌습니다.
세상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구시대의 주역들은 통상 청산의 대상이 되어지기
마련인데, 새로운 왕국의 왕은 바벨론왕국의 총리직까지 수행했든 다니엘을
새로운 왕국의 세사람의 총리중 한사람으로 중용을 합니다.
아마도 새로운 제국의 건국공신들 가운데 이를 못마땅해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이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 다음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자, 다니엘을
해하려는 그들의 생각은 더욱 구체화 됩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번씩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는 이 사실을
알아낸후 한 계책을 마련합니다.

그 계책이 무었인가 하면, 새로운 제국의 왕에 대한 백성들의 충성심을 확인해 본다는
구실로, 한달동안은 왕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경배하거나,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한 법령을 왕으로 하여금 전국에 반포케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왕의 법령을 어긴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넣도록 했습니다.
다니엘을 옭아넣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기도시간을
갖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에 세번씩 무릅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이었지만 다니엘의 기도는 감사만이 돋보였던 감사의 기도
였습니다.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하는 원망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좀 살려주십시요!“ 하는 하소연의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감사의 말>만 돋보이는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기도자였습니다.

그런다음 다니엘은 체포되어졌습니다. 왕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경배하지 말고,
기도도 하지 말라는 왕의 법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체포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 법령이 왕을 위한 법령이 아니고, 순전히
다니엘을 죽이기 위한 악한 신하들의 흉계였음을 알게 된 왕은, 어떻게든 다니엘을
살려보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왕은 자기의 사려깊지 못한 결정때문에, 죄없는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이 일로 식음을 전폐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샘니다.
그리고는 새벽이 되기가 무섭게 사자굴 앞으로 달려가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을
외쳐 부릅니다.
왕은 결코 다니엘이 그때까지 살아있으리라고 생각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멀쩡히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사자의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왕은 뛸듯이 기뻐하며 즉시 다니엘을 꺼내게 했고,
그대신 다니엘을 모함한 악한 신하들을 그 가족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넣어
죽이게 했습니다.
그런다음 다니엘은 새로운 제국의 왕 다음가는 통치자로서의 그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게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께 올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더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는 응답이 빠르고, 감사의 기도에는 역사하는 힘이 강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시편 136:1-3).“

둘째로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였습니다(다니엘 1:20).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피조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고, 하나님께서 이세상에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신 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서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영광과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편 8편).

19세기 화란의 목사요, 신학자요, 언론인이요, 정치가였던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 1837-1920)>가 몸이 아주 쇠약해져 이년간의 휴식기간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휴식기간을 주로 여행으로 소일했는데, 그때 그는 그의 어머니의
고국인 스위스에 들려 알프스산을 오르게 됩니다.
그때 이미 인터라켄(Interlaken)에는 3500미터까지 오르는 산악열차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는 이 산악열차를 이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직 비행기가 없던 그시절 그는 산악열차를 타고 높은 산을 오르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경치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치가
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육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는 기록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날의 창조의
결과를 내려다 보시면서 매우 흡족해 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이 표현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세상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답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이사실을 이때 새롭게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시편 8편의 말씀을 암송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시편 8:1).“

이 시편 8편은 후에 그의 장례식때 성시(聖詩)로 낭송이 되어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 인간이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역사적인 기독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이것을 제일되는 신조(信條)로 가르쳤습니다.

"소요리문답 제 1번: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었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이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공로없이 구원받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세상 사는동안 자나깨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도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들으시는
참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시편 29:1-2)."

셋째로 다니엘의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였습니다(다니엘 9:3-23).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내죄와 및 내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할 때..(다니엘 9:20)“

다니엘이 바벨론에 멸망당한 다른 유다왕국의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에 끌려가든 해가 주전
605년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에 포로로끌려간
유다의 백성들이 칠십년후에는 돌아와서, 다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크게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이었지만,
망해버린 조국과 파괴되어버린 예루살렘성전 생각때문에, 결코 그의 마음은
잠시도 편할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시간 때마다 예루살렘쪽을 향하여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의 소원은 자나깨나 유다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다시금
나라를 세우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왕국이 망하고, 포로생활 칠십년이 다 채워져가는데도,
여전히 유다의 포로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유가 유다백성들의 불신앙과, 유다백성들의 죄가 아직 하나님앞에
다 청산되지 못했기때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먼저 솔선수범하여 하나님앞에 회개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허름한 베옷에 재를 잔뜩 뒤집어 쓴 참담한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회개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 기도는 죽기를 각오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백성들과 과거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기도했고, 부르짖어 기도했으며,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브리엘 천사장을 보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약속해 주십니다(다니엘 9:20-24).
다니엘 선지자의 이 회개의 기도가 하나님께 수용되어진 일년후, 고레스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이스라엘의 포로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성전을 재건
하라고 명합니다. 그해가 주전 536년 포로생활 칠십년이 채워지든 해였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8:1-2).“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단절의 원인은 인간의 죄입니다.
그러기에 축복의 회복을 위해서는, 은혜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었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죄의 청산을 위한 회개가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걸지게 잘해도 그 기도가운데 회개가 없으면, 이 기도는 불완전한 기도요,
불충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인 성경은 하늘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죄인인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원튼 원치않튼 항상 죄짓고 살아가는 죄인들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무었입니까?
우리 모두가 죄가운데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죄문제 해결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천국백성이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시(啓示)된 말씀인 성경(聖經)의 대주제(大主題)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천국백성 삼아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떠맡으시고 십자가의 형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치르게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사도요한>은 환상중에, 흰옷을 입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큰무리들이,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든 이십사 장로들중 하나가 이 흰옷입은
무리들에 대해서 설명해 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옷을 희게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14).“

무슨 뜻입니까?
예수믿으면 죄문제 해결받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믿는 사람은 주님의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되어집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모든 지은 죄를 씻음받았기 때문에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주님 다시오시는 그날까지, 주님부르시는
그날까지 부단히 계속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그 지은 죄를 씻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날마다 지은 죄를 씻어낼 수 있습니까?
날마다 지은 죄를 하나님앞에 자복하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시는 사죄의 은총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안에 거듭나 새사람 되어진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속에는
성령(聖靈)께서 내주(內住)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듯한 기도를 올려도 그 기도안에 회개의 기도가
없으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기도, 불충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들으시는 참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회개의 기도는 단순한 혀끝의 회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죄에 대한 뉘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슬픔과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소망주시는 참회개가
되어집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큰죄를 범해 하나님께 내침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을 겪었지만, 그의 회개가 너무도 간절하고, 너무도 애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를 더욱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야 1:18).“

회개의 기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기도입니다.

넷째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참 기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따릅니다(다니엘 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사랑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로마서 8:28).
참기도의 사람 <욥>은 하나님의 은혜로 불치의 병을 치료받고, 잃은 재산과
자녀들을 곱으로 보상받았습니다(욥기 42:12-17).
참기도의 사람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소원을 성취하여 <사무엘>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얻었습니다(사무엘상 1:9-20).
참기도의 사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적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라..
(여호수아 10: 12-14).“

참기도의 사람 <히스기야왕>은 그가 병들어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더 연장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수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신다는 약속의 증거로, 아하스의 일영표(日影票)에
나오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나게 하는 보이셨습니다
(열왕기하 20:1-11).

이 두가지 사건에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메릴랠드 우주항공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항공사에서는
인공위성의 충돌을 막아야하는 위기상황때문에, 컴퓨터로 십만년전 까지를
소급해서 달의 궤도와 태양의 궤도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수한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만년동안 24시간의 오차가 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십만분의 일의 오차가 생길 수 있고,
이로인해 충돌사고의 위험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때, 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타이피스트가 말했습니다.
„소장님, 제가 어려서 주일학교 때 들은 이야기인데요, 여호수아가 기도를 해서
태양을 멈췄답니다.“
이말을 들은 소장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에 돌아온 소장은 이
타이피스트의 말이 자꾸만 귓전에 맴돌아, 마침내 구약성경 <여호수아>를
펼쳐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 10장 13절에 이렇게 나와있는
것입니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소장은 컴퓨터로 당시의 시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거기서 23시간 20분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흥분한 소장은 나머지 40분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계속
성경을 읽으며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열왕기하 20장에 히스기야와의
병고침받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이 병들어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15년의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왕은 그 증거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로 해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해시계는 24시간을 360도로 구분하여 만든 둥근 그림자시계입니다.
그중에 10도는 정확히 40분입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소장은 즉시 하나님께 무릅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정확무오성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기도에는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집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집니다.
죄를 씻어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이말씀 의지해서 기도의 승리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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