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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08 (토)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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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해야 합니다(누가복음 9:57-62)
          <각오해야 합니다 >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쫒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가서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계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 57-62).“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왕국의 북부지역인 갈릴리의 전도사역을
마무리하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든중 있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가시는 이길은 영광을 받으시러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오직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고민이되어 죽겠다(마태 26: 38).“
주님이 받으신 고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 인류의 대속(代續)을
위한 것이었지만, 주님이 받으신 그 고난의 쓴잔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날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하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 26: 39).“

신앙의 목표는 주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길에는 고난이 있고,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 24: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이길에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의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나선 몇명의 지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각오로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고난의 종교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이유는 그분이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고,
그분이 영원한 낙원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고난받을 각오를 하고 그분을 믿어야 하고, 고난받을
각오를 하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지만 영생의 삶을 위해서 입니다. 영원한 낙원의 삶을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믿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십자가 질 각오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57절, 58절).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고 세상에서는 배척을 당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와 질수록, 세상이 악해질수록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박해는 더욱더 극심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라야만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 주시는 구원의 은총과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을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길, 영생을 위한 길, 영원한 낙원을 위한 길은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하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누가 9:23).“

십자가가 무었입니까?
로마제국시대때 중죄인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습니다.
반란을 도모한 죄인들이나 흉악범들에게 적용되는 형틀이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잔인하게, 그러면서도 긴 시간을 끌면서 죽게하는
무서운 형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이 일은 일시적인 결단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비장한 각오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내가 주님께 속하였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한 15: 18-19).“

진정한 신앙의 사람들은 이같은 고난과 박해속에서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신약성경의 믿음장이라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의 증거요, 지난
이천년간의 교회역사의 증거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이북 순천에서는 몰래 숨어서 예배드리던 지하교인 다섯명이
발각되어 김일성 주체사상을 믿지않고 예수를 믿었다는 죄로 현장에서
맞아죽은후 거적대기에 덮인채로 어디론가 실려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만 해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기독교인들의 집회장소에
한 회교과격분자가 폭약을 몸에 감고들어가 자폭하는 바람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이 일은 이 세상에서의 안일과 잠시잠간의
낙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낙원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 어떤 희생이든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마태 5:11-12).“

둘째로 주님께 내삶을 드릴 각오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59절, 60절).

무슨 뜻입니까?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러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을 약속받게 해주셨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입니까?
사도바울은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답을 줍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 7-8).“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삶을 드려야하고, 주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사에 주님과 주님의 관심사가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 그분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먼저 주님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다음에 나의 가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일을 생각하고, 다음으로 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질사용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다음에 나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득의 십에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

예수님이 나의 구원의 주님이시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신앙고백을
예수님께 올리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그들이 취득한
물질로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학교를 지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이 살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의 주님으로,
그리고 그들의 삶의 주인으로 분명히 고백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이 바른신앙인가 그렇지 아니한가의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가 주님이고 주님의 관심사라면 나의 신앙은 분명히 바른신앙입니다.

기복신앙(祈福信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을 위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살뿐입니다.
신앙은 현세적인 축복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기복신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신앙의 대가는 현세적입니다.
그들은 결코 주님과 주님의 관심사를 삶의 우선순위로 삼지는 않 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그 어느것도
희생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축복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을 갖게되면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기때문에, 주님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기때문에 겪게되는 박해와 환난, 시련과 고난, 가난과 궁핍은 면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때 신실하고 충성된 종들에게 주시는 영생의 삶,
영원한 낙원의 삶을 누리지는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둬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았기든지 하면 무었이 유익하리요
(누가복음 9:23-25)."

신앙생활은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이요,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철저히 예수님께 속할 각오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61절, 62절).

허다히 많은 사람들이 급할 때,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습니다.
병이 생겼을 때,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만 주님을 가까이 합니다.
무슨뜻입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역활은 해결사로 족합니다.
주님이 삶의 주인은 아닙니다. 주님이 삶의 절대가치는 아닙니다.
이것은 옳은 신앙의 관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으면 철저하게 예수의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기쁨이 되어져야 하고, 예수님은 나의 보람이 되어져야 하고,
예수님은 나의 자랑이 되어져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요, 예수님은 내 삶의 최고의 가치가 되어져야 합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쎄!“

찬송가 82장의 찬양의 내용처럼 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주위사람들이 보기에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지셔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주님을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드러내기를 주저한다든가,
부끄러워 한다면, 주님은 결코 내삶의 주인이 아니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세상에서, 또 사람들 앞에서 내가 주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밝히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들을 부끄러워 하리라 (누가 9:26).“

철저히 주님께 속한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은 삶의 최고의 가치요, 자랑거리요,
보람입니다.
그러기에 애써 그분의 뜻을 따라 살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전인격적인 신앙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최선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같은 신앙의 자세가 그분이 보시기에 바른 신앙의 모습이고, 우리의 영생의
삶과, 우리의 영원한 낙원의 삶을 위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철저히 주님께 속하여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할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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