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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1-11 (화)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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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회복을 위하여(학개 2:10-19)
                   <축복의 회복을 위하여> 학개 2:10-19



„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이제 청컨데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러 이른즉 이십그릇 뿐이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외의 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 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러나 오늘 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축복의 회복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전 520년경 학개 선지자가 바벨론포로생활로 부터 돌아와 다시금 그들의 고국에
정착해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동안의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생활로 부터 해방되어져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전에
주셨든 축복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에 보면 „그러나 오늘부터는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고 하나님
께서 축복의 회복을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축복의 회복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금 이전처럼
풍성히 농산물을 수확하게 하시고, 이전의 풍요로운 삶을 회복시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앞에 두었은즉 너는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19).“

인간의 생사회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야 잘됩니다.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되려고 하지않고 자신의 지닌 재주와
능력으로 잘되려고 하기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지닌 재주와 능력으로 잘될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 철저히 의지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추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스스로의 지닌 재주와 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주있고 능력있다고 해서 꼭 잘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점은 세상사람 누구나가 다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축복이 회복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복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 화를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기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

신자(信者)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범사가 잘됩니다. 믿음으로 살면 형통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가 적용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434장의 내용은 이같은 축복의 원리를 터득한 한 성도의 신앙간증을
찬양으로 옮긴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 받겠네,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게 붙들려 바벨론땅에 처음 포로로 끌려간
때가 주전 605년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칠십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놓여 그리운 고국땅으로 돌아옵니다(예레미야 25:9-11,다니엘 9:2).
구약성경 에스라 1장에 보면 바벨론왕국을 멸망시킨 바사왕 고레스는 조서를 내려
포로로 붙들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을 명합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옛날 바벨론 군대가 불살랐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명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고래스는 바벨론 군대가 약탈해갔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도구들을 돌려주게 했고,
이스라엘의 포로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방백들로 하여금 재물을 거두어 이 일을 거들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해서 바사왕  고레스의 분부에 따라  예루살렘성전 재건을 위해 주전537년경 고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도합 49897명이었습니다.
물론 이숫자에 는 여자와 어린이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포로생활에서벗어난 그해는 에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포로된지 꼭 칠십년 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포로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바사왕 고레스의 특별한 은택을 덧입게 된 것도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예루살렘성전 건축이라는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잘되어 풍성한 농산물을 수확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 대신 그곳에
정착하게된 이방민족들의 방해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방해공작은 참으로 끈질기고
집요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공사를 중단하고 맙니다. 그런후 무려 15년의 세월이
지납니다. 그간 그 누구도 성전공사를 재개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핸가 부터 그땅에 기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궁핍해지기
시작했으며, 가난해진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들을 같은 동족들에게 종으로 팔아
넘기거나  스스로 종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들에게 그런 재난이 닥치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비를
내리지않는 하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원인은 그들의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재건은 그들이 어떠한
일이있어도 완수해야 할 그들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
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역부족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축복을 거두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당신의 백성 삼아주시고, 당신의 자녀 삼아주신 것은,
우리에게 축복된 삶을 허락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인들에게 종종 실패와 시련의 상황들이 닥칩니다.
왜이겠습니까?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멧세지입니다.
물론 축복의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회개하고 고치면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실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면 할수록 사탄은 더 집요하게
우리를 대적하고, 더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회복을 위해서 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둘째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축복이 회복되어 집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보다 깊은 의미는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주님
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 7-8).“

주님께 삶을 드리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11절, 12절).“

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드려졌다>,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어
졌다>는 뜻입니다.
거룩한 고기, 거룩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거룩한 고기요, 거룩한
제물인 것입니다.
이 거룩한 제물을 싼 보자기기가 여기저기 쓰치고 지나간다 해서 동일하게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입니까? 동일하게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져야 거룩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어져야 거룩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에서는 회중(會衆)들을 가리켜서, 성도(聖徒)라고 합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무리요,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어진 무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드린다고 해서, 교인들과 함께 어울린다고 해서 같이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성별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어지고, 하나님께서 한량없이 복주시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동방의 의인 욥은 세상에 사는동안 복을 많이 받아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장수의 복을 누렸고, 자손의 복을 누렸으며, 재물의 복을 누렸고, 존귀(尊貴)히
여김을 받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들이 그런 특별한 복을 누린것은 하나님을 위해 성별된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을 살아야 축복이 회복되어 집니다.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부정하겠는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13절).“

무슨 뜻입니까? 왜곡된 신앙, 인본주의적인 신앙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삶에는 인본주의적(人本主意的)인 삶과 신본주의적(神本主意的)인 삶이 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삶이 무었입니까? 나를 위한 삶,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지는
삶입니다.
매사에 나의 유익이 우선입니다. 세속적인 삶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신본주의적인 삶의 특징은 무었입니까?
하나님께 드려진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입니다.
역사적 기독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이 삶을 제 1의 신조(信條)로 가르쳤습니다.

„소요리문답 제 1번: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었입니까?
답: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이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삶, 하나님을 위한 삶, 하나님 한분만으로 얼마든지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삶,
바로 신본주의적인 삶입니다.

예를들면 무었이 인본주의적인 삶입니까?
옛날 유럽의 군주들은 자신들을 위해 높은곳에 웅장한 궁궐을 짓고, 그 궁궐의 지하에는
반대자들을 가두기 위해 감옥을 지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와 그의 가족들을 위해 북한전역 수십곳에 전용
기차역까지 갖춘 호화 별장을 지었고, 그와 그의 사상에 순응하지않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북한 전역에
수십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Gulag)를 설치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않는 사람만이 추구할 수 있는 인본주의적인 사고(思考)입니다.

반대로 오래전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간 미국의 청교도들은 그들이 정착한 새땅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제일 먼저 교회당을 지었고, 다음으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학교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런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그들의 거처를 지었습니다.
바로 신본주의적인 삶,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후손을 축복하셨고, 그들은 마침내 세계 에서 으뜸가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고인이되신 한경직 목사님은 영락교회를 설립하신 분인데
영락교회는 육이오동란때 이북에서 피난온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교인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마침내 커다란 대형교회당을 짓게
되는데 그들에게 자체경비가 있을리 없었습니다.
이때 한경직 목사님은 대부분 하늘만 가린 허름한 임시 가건물안에서 살고잇는
피난민 교인들에게 „세끼 먹을 것만 남겨놓고, 다 하나님께 바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에 호응했고, 그렇게해서 그 커다란 영락교회 건물이 완성되어
졌습니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때의 헌금자 명단을 항상 지니고 계셧는데, 어느날 무심코 그 명단을
들여다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가진 모든 것을 헌금했든 교인들이 헌금액의 순서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업가들이
되어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축복하셧던 것입니다.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백성이 그리하고, 그들의
모든 일도 그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14절).“

무슨 뜻입니까?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다시금 고국땅에 정착해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세월 동안
기근을 겪으며 그 생활이 말할 수 없이 궁핍해 졌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어집니다.
그들의 신앙은 신본주의 신앙에서 인본주의 신앙으로 변질되어 있었고, 그들의 삶도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에서 인간 중심주의의 삶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신앙적 습관은 남아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어가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찌니라(학개 1:2-5).“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칠십년 만에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했든 고향땅에
돌라오게 되었는데, 그때 그들은 그들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이제부터는 절대로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당연히 우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고, 모이기를 힘쓰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실천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하지 않았습니다. 해방과 고국으로의 귀환의 감격이 사그라지면서
그들은 그 막중한 성전건축의 책무는 뒤로미룬채 너도나도 재물을 쌓는 일에 열중했고,
웬만큼 재산을 모았다 하면 다음으로는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 쌓은 부를 과시했습니다.
철저한 인간 중심주의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해방된 이스라엘 공동체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공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복은 떠나가고,  그들의 생활은 오랜 기근과  빈번한 외적의 침입으로
한없이 궁핍하고 비참해 집니다.

„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포도주에, 기름에, 다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학개 1: 9-11).“

인본주의적 신앙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닫고 회개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재산과
그들의 전 인력을 동원하여 성전공사를 재개합니다.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학개 1:12).“

그들은 회개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렸고, 그들의 재산과, 그들의 몸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온전한 신앙회복을 이루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시금 그들가운데 임재하셨고 , 그들과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4).“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희편이 되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축복의 회복을 선언해 주십니다.

„오늘 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셨습니까?
바른신앙을 회복하십시요! 신본주의적인 신앙, 하나님 중심주의의 삶, 하나님을
위하는 삶을 회복하십시요!  반드시 하나님은 다시 찾아와 주시고, 축복을 회복해
주십니다.

„오늘 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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